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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더 갈고 닦는 이유

by 용접맨 2025. 9. 5.

안녕하세요, 용접의 시작은 불꽃이 아니라 '밑 작업'에 있다고 믿는 남자, '용접맨'입니다.

제가 햇병아리 용접사였을 때, 한 번은 급한 납기를 맞춰야 하는 부품을 용접한 적이 있습니다. 살짝 녹이 슨 철판이었지만, '이 정도는 강력한 아크열에 다 녹아버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서둘러 용접을 시작했죠. 비드는 겉보기에 제법 그럴싸하게 나왔고, 저는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현장 소장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제 손에는 망치 하나가 들려있었죠. 소장님은 제가 용접한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김 군, 이거 한번 톡 쳐봐."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용접부를 망치로 가볍게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제 '완벽해 보였던' 용접부는 마치 과자처럼 '툭' 소리를 내며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날의 창피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뼈에 새기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용접은 그 토대가 되는 금속 표면보다 결코 강할 수 없다는 것을요.

오늘은 많은 분이 '귀찮다'는 이유로 건너뛰는, 하지만 A급 용접사일수록 더 집착하는 '표면 처리'가 왜 용접의 성패를 좌우하는지, 저의 실패담과 함께 확실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왜 10분을 더 투자해야 하는가? "열로 녹이면 다 똑같지 않나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입니다. "어차피 수천 도의 열로 녹일 건데, 표면의 녹이나 기름이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이는 소독도 하지 않은 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같은 생각입니다.

용접은 쇳물이 녹아 서로 '완벽하게 융합'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표면에 있던 녹, 기름, 페인트, 수분 같은 불순물들은 강력한 아크 열에 타거나 기화하면서 가스를 발생시킵니다. 이 가스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굳어가는 `ㅅ`물속에 갇히면, 마치 스펀지처럼 수많은 구멍(기공)이 뚫린, 약해빠진 용접부가 탄생하는 것이죠.

표면 처리를 생략한 용접 시험편이 망치 충격에 떨어져 나가는 모습과, 표면 처리를 완벽하게 한 시험편이 충격에도 불구하고 모재가 휘어질지언정 용접부가 굳건히 버티는 모습
표면 처리를 생략한 용접 시험편이 망치 충격에 떨어져 나가는 모습과, 표면 처리를 완벽하게 한 시험편이 충격에도 불구하고 모재가 휘어질지언정 용접부가 굳건히 버티는 모습

당신의 용접을 파괴하는 3대 암살자

깨끗한 용접을 방해하고, 결과물의 수명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3명의 암살자가 있습니다. 이들을 반드시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암살자 1: 녹 (Rust) - 강도를 좀먹는 암세포

녹은 순수한 쇠가 아닙니다. 산소와 만나 변질된 '산화철'이라는 불순물 덩어리죠. 녹슨 표면 위에 용접하는 것은, 시멘트 반죽에 흙을 섞어서 벽돌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붙어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 결합력이 현저히 떨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고, 그 부분을 시작으로 부식이 훨씬 빠르게 진행됩니다.

암살자 2: 기름 (Oil/Grease) - 결합을 막는 투명한 분리막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름때나 가공유는 용접의 '투명한 적'입니다. 이 유분은 쇳물이 모재 깊숙이 스며드는 것(용입)을 방해하는 얇은 막 역할을 합니다. 겉으로는 붙었지만, 실제로는 살짝 얹혀있는 수준이죠. 제가 초보 시절 깨끗한 알루미늄 판을 맨손으로 만진 뒤 용접했다가 비드 전체에 미세한 구멍이 생겼던 경험이 있습니다. 범인은 바로 제 손에 있던 유분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기름기는 용접에 치명적입니다.

암살자 3: 페인트와 수분 (Paint & Moisture) - 예측불허의 시한폭탄

페인트를 제거하지 않고 용접하는 것은 유독가스를 마시며 불량품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연소된 페인트 재는 쇳물에 섞여 용접부를 오염시키고, 아크를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수분(습기)은 더 위험합니다. 용접 열에 분해된 수소(H)가 용접부 내부에 침투했다가, 시간이 지난 뒤 균열을 일으키는 '지연 파괴'의 주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A급 용접사의 3단계 클리닝 루틴

A급 용접사들은 용접봉을 잡기 전, 반드시 아래의 3단계 의식을 거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작업의 일부입니다.

* 1단계: 물리적 공격 (Mechanical Assault)

그라인더와 와이어 브러시를 손에 잡으세요. 목표는 단 하나, 금속 본연의 은빛 속살이 드러날 때까지 표면의 녹, 페인트, 이물질을 모조리 벗겨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불량품을 막는 가장 기분 좋은 소리입니다.

* 2단계: 화학적 소독 (Chemical Disinfection)

눈에 보이지 않는 기름때를 박멸할 차례입니다. 아세톤이나 전용 탈지제를 깨끗한 천에 묻혀 꼼꼼하게 닦아냅니다. 기름을 그냥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3단계: 최종 확인 (Final Inspection & Drying)

모든 세척 후, 압축 공기로 미세한 먼지를 날려버리고, 마른 천으로 표면에 남은 습기가 없는지 완벽하게 확인합니다. 이제, 비로소 당신은 용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실력은 그라인더 소리에서 증명됩니다.

화려한 용접 기술은 누구나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의 가치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지루하고 먼지 날리는 '밑 작업'에서 결정됩니다.

용접의 품질은 아크가 터지기 전에 이미 90%가 결정된다는 말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용접봉을 잡기 전 그라인더를 먼저 잡는 당신의 그 모습이야말로, 당신이 최고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진정한 장인(匠人)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