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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4대 기본자세 정복기 (1G, 2G, 3G, 4G)

by 용접맨 2025. 9. 5.

안녕하세요, 쇠를 다루는 것만큼이나 중력을 다루는 일이 중요한 남자, '용접맨'입니다. 제가 처음 용접을 배우고 아래보기(1G) 자세로 첫 직선 비드를 그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이거 완전 내 적성이잖아?"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어깨가 으쓱했죠. 중력은 제 편이었고, 녹아내린 쇳물은 얌전히 제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교관님이 수직으로 세워진 철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 벽에다 용접해 봐."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용접은 단지 쇳물을 녹이는 기술이 아니라, '흘러내리려는 쇳물과 중력의 힘겨루기에서 이기는 기술'이라는 것을요. 꿀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쇳물 앞에서 제 자신감은 처참히 녹아내렸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시절의 저처럼, 중력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을지 모를 여러분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용접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4가지 레벨업 퀘스트, 지금부터 저와 함께 하나씩 정복해 보시죠.

Level 1. 튜토리얼 존: 아래보기 자세 (1G/1F, Flat)

* 퀘스트 설명: 바닥에 놓인 철판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용접하는, 모든 용접의 시작이자 가장 기초적인 자세입니다.

* 난이도: ★☆☆☆☆ (매우 쉬움)

중력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이 자세에서는 중력이 쇳물을 아래로 자연스럽게 눌러주어 용접웅덩이(Weld Pool)가 아주 안정적으로 형성됩니다. 마치 책상에 노트를 펴고 글씨를 쓰는 것처럼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세죠. 속도도 가장 빠르고, 품질도 가장 우수하게 나옵니다.

용접맨의 조언: "가장 쉬울 때, 기본기를 완성하라!"

이 단계는 쉽다고 그냥 넘어갈 구간이 아닙니다. 전류, 전압, 속도, 아크 길이 등 용접의 4대 요소를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튜토리얼 존'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여러분의 근육 메모리가 다음 레벨들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Level 2. 첫 번째 시련: 수평 자세 (2G/2F, Horizontal)

* 퀘스트 설명: 수직으로 세워진 철판에 수평(가로) 방향으로 용접을 진행합니다.

* 난이도: ★★★☆☆ (조금 까다로움)

이때부터 중력은 슬슬 본색을 드러냅니다. 쇳물이 미세하게 아래쪽으로 처지려는 힘이 작용하죠. 처음 수평 용접을 했을 때, 제 결과물은 항상 윗부분은 덜 채워져 움푹 파이고(언더컷), 아랫부분은 쇳물이 뭉쳐(오버랩) 있었습니다. 마치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데 페인트가 아래로 살짝 흘러내리는 것과 같았죠.

(좌) 중력을 고려하지 않아 아랫부분만 쇳물이 뭉친 실패작. (우) 토치 각도를 미세하게 위로 조정하여 중력을 이겨낸 성공적인 비드
(좌) 중력을 고려하지 않아 아랫부분만 쇳물이 뭉친 실패작. (우) 토치 각도를 미세하게 위로 조정하여 중력을 이겨낸 성공적인 비드

 

용접맨의 공략법: "중력이 당기는 반대편으로 살짝 밀어줘라!"

공략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토치(홀더)의 각도를 정자세에서 약 5~10도 정도 살짝 위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중력이 아래로 당기는 힘을, 아크의 힘으로 살짝 밀어 올려주는 원리죠. 이 미세한 각도 차이가 여러분의 비드를 전문가 수준으로 바꿔줄 것입니다.

Level 3. 중급자 관문: 수직 자세 (3G/3F, Vertical)

* 퀘스트 설명: 수직으로 선 철판을 아래에서 위로(상향) 또는 위에서 아래로(하향) 용접합니다.

* 난이도: ★★★★☆ (어려움)

중력과의 정면 대결

여기서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입니다. 많은 초보자들이 이 단계에서 좌절감을 느끼죠. 액체 상태의 쇳물이 엿가락처럼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리려는 힘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 상향법 (Uphill):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용접하는 방식으로, 먼저 만든 쇳물이 선반(Shelf) 역할을 하며 다음에 올라올 쇳물을 받쳐주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깊고 튼튼한 용접이 가능합니다.

* 하향법 (Downhill):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며 용접합니다. 속도는 빠르지만, 쇳물이 먼저 흘러가 버려 용입이 얕아질 수 있어 얇은 판에 주로 사용됩니다.

용접맨의 공략법: "쌓거나, 혹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라!"

상향 자세에서는 좌우로 살짝 흔드는 '위빙' 동작으로, 쇳물이 흘러내릴 틈을 주지 않고 양옆에 잠시 머물며 식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벽돌을 한 칸씩 쌓아 올리듯, 차분함이 생명입니다. 반대로 하향 자세에서는 망설임 없는 빠른 속도가 핵심입니다.

Level 4. 극한의 도전: 위보기 자세 (4G/4F, Overhead)

* 퀘스트 설명: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며 용접하는, 중력에 완벽하게 저항해야 하는 자세입니다.

* 난이도: ★★★★★ (매우 어려움 & 위험)

내 얼굴로 쏟아지는 불꽃비

모든 자세 중 가장 어렵고 위험한 최종 보스입니다. 쇳물과 불꽃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그대로 제 얼굴과 몸으로 쏟아지려고 하기 때문이죠. 이 자세를 처음 연습할 때의 공포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방화복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쇳물 방울, 시야를 가리는 연기 속에서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용접맨의 공략법: "절대 욕심내지 마라!"

위보기 자세의 핵심은 '작고 빠른' 용접입니다. 쇳물 웅덩이(Weld Pool)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 흘러내리기 전에 굳게 만들어야 합니다. 길고 두꺼운 비드를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짧은 아크를 유지하며 점을 찍듯 빠르게 겹쳐나가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화두건, 난연 작업복 등 모든 개인보호구를 완벽하게 착용하는 것입니다. 멋진 비드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안전입니다.

중력을 이겨낸 당신, 진정한 용접사입니다.

용접 자세를 정복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힘인 중력의 원리를 이해하고, 인내심을 갖고 그 힘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아래보기 자세부터 극한의 위보기 자세까지, 이 4가지 퀘스트를 모두 마스터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어떤 현장,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용접사'로 거듭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