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용접 기술만큼이나 '용접 언어'가 중요하다고 믿는 남자, '용접맨'입니다.
제가 훈련원을 막 수료하고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론과 실습에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현장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땀 흘리며 용접을 하고 있는데, 반장님이 멀리서 소리쳤습니다.
"어이, 김 군! 거기 루트 패스 용입이 너무 얕아! 위빙으로 파이널 패스 덮을 때 언더컷 안 생기게 조심하고, 스패터도 너무 많이 튀잖아!"
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패스...? 용입...? 위빙...?' 분명 한국말인데, 단 한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단어와 현장의 '언어'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죠.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현장에서 진짜 동료로 인정받으려면, 기술뿐만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요.
오늘은 과거의 저처럼 현장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책에는 나오지 않는 생생한 비유와 함께, 전문가처럼 소통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용접 은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교시: '작업 시작' 대화 - 기본 중의 기본
용접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무엇을', '무엇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합니다.
* 모재 (Base Metal): "오늘의 '캔버스'입니다."
당신이 용접할 대상, 즉 철판이나 파이프 그 자체를 말합니다. 모든 작업의 기준점이죠.
* 용가재 (Filler Metal): "캔버스를 채울 '물감' 또는 '잉크'입니다."
틈을 메우기 위해 녹여 넣는 용접봉이나 용접 와이어를 뜻합니다.
* 아크 (Arc) & 용융 풀 (Weld Pool):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순간'과 그때 생기는 '물감 웅덩이'입니다."
용접봉 끝과 모재 사이에 발생하는 강력한 불꽃이 '아크' , 이 아크의 열로 모재와 용가재가 녹아 만들어진 작은 쇳물 웅덩이가 바로 '용융 풀'입니다. 모든 마법은 바로 이 작은 웅덩이 안에서 일어납니다.
2교시: '작업 과정' 대화 -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본격적인 용접이 시작되면, 작업의 '방식'과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오고 갑니다.
* 패스 (Pass): "붓으로 선을 한번 '쭉' 긋는 행위입니다."
용접을 시작해서 끝까지 한 줄로 진행한 것을 '1 패스'라고 합니다. 얇게 한 줄만 그으면 '스트레이트 패스', 좌우로 흔들며 넓게 칠하면 '위빙 패스'라고 부르죠. 두꺼운 모재는 여러 번의 '패스'를 겹쳐 쌓아 올립니다.
* 용입 (Penetration): "물감이 캔버스에 얼마나 '깊게' 스며들었는가 하는 정도입니다."
쇳물이 모재 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녹아들어 갔는지를 나타냅니다. '용입'이 깊을수록 튼튼한 용접이죠. 용입이 얕으면 겉에만 살짝 붙인 '스티커' 신세가 됩니다.
* 슬래그 (Slag) & 스패터 (Spatter): "요리할 때 생기는 '껍질'과 사방으로 튀는 '기름방울'입니다."
'슬래그'는 용접부를 보호하기 위해 생기는 껍질 같은 찌꺼기로, 작업 후에 반드시 망치로 쳐서 제거해야 합니다. '스패터'는 용접 중에 사방으로 튀는 불꽃 찌꺼기입니다. 스패터가 너무 많다는 건, 당신의 용접이 거칠고 불안정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3교시: '작업 평가' 대화 - 결과는 어떠한가?
모든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결과물을 보며 '잘잘못'을 이야기합니다.
* 비드 (Bead): "작업이 끝난 후 남은 당신의 '서명(Signature)'입니다."
쇳물이 굳어서 만들어진 물결 모양의 용접 라인을 말합니다. 비드의 모양만 봐도 용접사의 실력을 알 수 있죠.
* 크랙 (Crack) & 기공 (Porosity): "완성품에 나타난 '치명적인 하자'입니다."
'크랙'은 용접부가 갈라지는, 가장 위험한 결함입니다. '기공'은 내부에 생긴 작은 공기 방울(구멍)로, 용접부의 강도를 약하게 만듭니다. 이 둘 중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용접은 실패입니다.
* 언더컷 (Undercut) & 오버랩 (Overlap):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미세한 실수'입니다."
'언더컷'은 의욕이 너무 앞서 모재 가장자리를 너무 깊게 파먹은 실수입니다. '오버랩'은 반대로 쇳물이 모재에 녹아들지 못하고 그냥 겉에 겹쳐서 굳어버린, 소심한 실수죠.
언어가 통하면, 기술도 통합니다.
처음에는 외국어처럼 들렸던 현장의 언어들, 이제 조금은 익숙해지셨나요?
이 용어들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료들과 정확하게 소통하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며, 진정한 팀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반장님이 "언더컷 조심해!"라고 외쳤을 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당신의 손끝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신참이 아닌 든든한 동료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